책 만드는 사람들

《은조마네의 구구도생》 출간 기록 #2

닉 믈롱고의 장편소설 《Dog Eat Dog》 한국어판을 준비하며 남기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을 만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 남아공으로 이민을 갔다. 왜? 거기에 뭐가 있다고? 그 나라는 한때 1980년대의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재야 인사가 있었고,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그 이름을 크게 말하기 두려워했다. 그러더니 넬슨 만델라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악명 높던 아파르트헤이트가 선거로 종식됐다. 다인종, 다문화의 무지개 나라를 천명하고 선거에서 이긴 과반 집권당은 내각을 개방하여 연정을 구성했다.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던 피지배 인종이 오래고 질긴 싸움에서 승리하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권력자들과 화합했다. 멀리서 본 남아공은 그랬다. 그리고 너무도 완벽해 보여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하였기를, 앞으로는 평화롭기를 바랐다.

이민 간 선배와 연락이 뜸해진 뒤로는 소식이 궁금할 때 남아공 뉴스를 찾아본다. 전기 공급이 불안정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가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 험지에 가기를 꺼리지 않던 유명한 여행 유튜버도 경호원을 고용해서 요하네스버그를 여행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치안이 불안하고 경제는 외국 자본에 너무 의존하는 데다 인프라는 엉망이다. 어려울 때 뭉쳤던 흑인들끼리도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상하기 어려운 폭력을 휘두르고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뉴스로 보는 남아공은 이랬다.

어쩌다가? 가까이에서 보지 않았으니 전혀 모른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던 거지?

남아공에도 많은 작가들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할 뿐.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지금은 Gemini와 ChatGPT, Claude를 쓴다. 자세히 묻지 않아도 작가의 프로필과 대표작까지 알려 준다. 1인 출판사도 어찌어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고르다 보니 강렬한 제목을 가진 책이 눈에 들어온다. 《Dog Eat Dog》. 요약된 줄거리를 찾아 읽어 본다. 흥미롭다. 작가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과장하지 않는다(이 책은 자전적 요소가 짙은 소설이다). 현실을 감당하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면 이렇게 할 것이다. 이제 전체 글을 읽어 봐야 한다.

아마존에 들어가 《Dog Eat Dog》을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막상 읽어 보면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겠다, 아니 너무 마음에 들어서 책으로 내고 싶은데 그다음은 어떻게 하는 거지? 혼자 일하는 신생 출판사에 판권을 줄까? 번역가는 어떻게 구하지? 첫 번째 기획에서 주저앉은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어쩌면 출판사는 신고할 때가 아니라 이제 시작인 거다.

다음 편에 소개할 이야기이지만, 아마존에 주문한 책보다 네덜란드에 있는 에이전시에서 보내 준 검토용 원고가 먼저 도착했다. 역시 생각하는 순서와 실제로 일이 진행되는 순서는 다르다. 읽어 보니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익살스럽고 당돌한 대학생의 이야기다. 재미있게 읽다 보니, 헉. ‘Nghoma ya makhalibode’. 샹간어가 나온다. 다행히 작가는 영어로 병기해 놓았다. 번역하시는 분이 고생하겠는걸. 또 다른 고민을 해 본다.

닉 믈롱고

Niq Mhlongo, 한글로 어떻게 적어야 맞는지, 어떻게 발음해야 정확한지 아직도 어렵다. 작가는 요하네스버그 남서쪽의 흑인 거주 지역 소웨토에서 나고 자랐다. 남아공의 첫 번째 민주 선거 이후의 삶을 소설로 쓰고, 소웨토에서의 삶을 무척이나 자세히 묘사한다. 작가 자신도 1990년대에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를 다녔다. 첫 장편 《Dog Eat Dog》(2004)은 그 시절 대학생의 이야기다.

작가는 내가 궁금해하는 시간과 장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조마네

이름은 딩가만지 마케다마 은조마네. 친구들은 딩즈라고 부른다. 은조마네는 닉 믈롱고의 첫 번째 장편소설 《Dog Eat Dog》의 주인공이다. 1994년,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에 다닌다. 남아공에서 처음으로 모든 인종이 한 표씩 던지는 선거가 열리던 해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런데 학자금 지원 신청은 거절당한다. 등록금은 누가 내지? 머물던 YMCA 숙소에서는 여자를 방에 들였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시험을 미룰 핑계를 찾아 가짜 사망 진단서를 구하러 다닌다. 성적은 바닥이다. 얻어맞고, 뜯기고, 쫓긴다. 대학에는 다니면서도 졸업한 뒤 자칫 노숙자가 될까 두렵다. 이 모든 것이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의 이야기다. 그렇겠지, 갑자기 나라가 민주화되고 인종 차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바뀌었을 리가…….

그래도 은조마네는 주저앉지 않는다. 능청을 떨고, 둘러대고, 버틴다. 언뜻 암울해 보이지만 소설 속 풋내기 사기꾼은 주변과 충돌할 때마다 웃음을 준다.

“이 나라에서 백인들이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야 해.”
— 《은조마네의 구구도생》 중에서

개처럼 비겁하고 구차해지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구구도생(狗苟圖生)이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던 거지? 은조마네는 이렇게 살았다.

코파노 마틀와

은조마네의 1994년 다음은 어땠을까? 민주화의 희망 속에서 성장한 다음 세대는 무엇과 싸울까? 그렇게 또 다른 작가 코파노 마틀와를 만났다. 그녀는 1985년 프리토리아 인근 타운십에서 태어났다. 의대에 다니던 중 첫 장편 《Coconut》(2007)을 발표했다. 부유한 백인 거주 교외에서 자란 오필웨와 가난한 타운십 출신의 피킬레, 두 흑인 소녀가 주인공이다.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피부색과 문화적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백인 학교에 다니고 백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흑인이라기엔 너무 하얗고, 백인이라기엔 너무 검은” 자리에 놓인다. 겉은 갈색이고 속은 하얀 코코넛과 같다.

또 다른 소설 《Period Pain》(2016)의 주인공 마세차바는 어릴 적 꿈대로 의사가 된다. 그런데 일하는 곳은 열악한 공립병원이고, 거리에는 외국인을 향한 혐오가 번진다. 뉴스로만 보던 바로 그 폭력이다. 작가 자신도 의사로 일하며 소설을 쓴다.

두 작품의 한국어판도 이지마스터가 펴낼 것이다. 단순히 그들의 경험과 생각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다가 남 탓도 해 보지만 끝내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를 사는 주변의 이야기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은조마네의 구구도생》은 2026년 12월에 출간됩니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한국어판을 가장 먼저 만나실 수 있습니다. 텀블벅 펀딩 페이지

다음에는 국내 에이전시도 없이 무작정 덤볐던 책의 판권 계약 과정을 정리합니다.